남장하고 글공부 떠난 자청비가 밭의 신이 되기까지
자청비가 사랑과 시련을 스스로 헤쳐 농경을 맡는 신으로 자리 잡는 제주 세경본풀이의 중심 이야기다.
초기 자료 · 마지막 검토 2026-08-04옛날 제주에 김진국과 조진국이라는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정성을 드렸는데, 바쳐야 할 몫에서 한 근이 모자란 탓인지 아들 대신 딸을 얻었다. 부부는 스스로 청해 얻은 아이란 뜻을 담아 딸의 이름을 자청비라 지었다.
자청비가 자라 냇가에서 빨래하던 날, 하늘 옥황으로 글공부를 하러 가던 문도령이 물을 청했다. 자청비는 찬물을 급히 마시면 탈이 날까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문도령이 일부러 마시기 어렵게 한다며 성을 내자, 자청비는 먼길 온 사람이 물을 급히 삼키지 않도록 한 것이라 답했다. 문도령은 그제야 자청비의 지혜를 알아보았다.
문도령이 공부하러 간다는 말을 들은 자청비는 자신도 세상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는 남장을 하고 문도령과 동문수학했다. 문도령은 여러 차례 동무가 여자일지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자청비는 그때마다 재치 있게 위기를 넘겼고 글과 활쏘기에서도 남들보다 앞섰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야 자청비는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고 문도령과 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도령은 사랑의 징표만 남기고 하늘로 돌아갔다. 기다림에 지친 자청비는 집안의 종 정수남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섰다. 길에서 정수남이 자청비를 욕보이려 하자 자청비는 자신을 지키려 그를 죽였다. 집으로 돌아온 자청비는 살인했다는 이유로 내쫓겼고, 청태산 마귀할멈의 수양딸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자청비는 중의 행색으로 하늘에 올라가 마침내 문도령을 다시 만났다. 문도령의 집안은 둘의 혼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자청비는 칼날을 세운 다리를 걷는 시험을 비롯한 여러 위험한 시험을 통과했다. 누구의 딸이나 누구의 아내이기 전에 자기 힘으로 자리를 얻은 뒤에야 혼인을 인정받았다.
혼인 뒤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문도령을 시기한 선비들이 그를 죽이자 자청비는 서천꽃밭으로 향했다. 꽃감관에게 다가가기 위해 남장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환생꽃을 얻기 위한 약속도 받아들였다. 그는 꽃을 가지고 돌아와 문도령을 살려 냈다. 이 대목에서 자청비는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까지 건너가 사랑하는 이를 되찾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자청비는 하늘의 싸움에서도 공을 세워 땅과 오곡의 씨앗을 얻었다. 그러나 하늘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인간이 농사짓는 땅으로 내려오기를 택했다. 문도령은 하늘에서 농사를 돌보는 상세경, 자청비는 땅의 농사를 맡는 중세경, 정수남은 소와 말을 맡는 하세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경본풀이에서 농사는 씨앗만 뿌리면 되는 일이 아니다. 배움과 사랑, 계급의 벽, 죽음과 재생을 모두 통과한 자청비가 땅에 좌정해야 비로소 농사의 질서가 완성된다. 자청비는 운명을 기다린 여인이 아니라 자기 운명을 직접 청하고 끝내 일군 농경신으로 남았다.
세경본풀이는 굿에서 농경신의 내력을 풀어내는 무속신화다. 자청비는 남장, 학업, 저승 여행, 재생의 꽃 같은 여러 모티프를 통과하는 능동적 주인공이다.
문도령·정수남과의 관계, 시련의 순서와 결말은 심방의 구연본에 따라 세부 차이가 있다.
초자연적 사건과 유래 설명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아래 자료에서 확인되는 전승 내용과 구연본의 차이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초안으로 다시 열기
문제가 되는 부분과 이유를 적어 다시 열기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함께 남긴 이야기
댓글 0개
비슷하거나 이어지는 기록
이 글에서 이어서 볼 만한 기록
꽃 피우기 내기에서 속임수가 이겨버린 지금 세상
대별왕과 소별왕은 이승과 저승을 누가 맡을지 꽃 피우기 내기를 했다. 정직하게 꽃을 피운 형과 달리 동생은 잠든 사이 꽃을 바꿔 이겼고, 그래서 지금 이승에는 선악과 질서가 뒤섞였다는 설명이 붙는다.
나도 알아요 0‘내 복은 내 덕’이라 했다가 쫓겨난 감은장아기
부모가 누구 덕에 잘사느냐고 묻자 두 언니는 부모 덕이라고 답했다. 막내 감은장아기만 자기 운명과 능력 덕이라고 말해 쫓겨났고, 그가 떠난 뒤 부모는 재산과 시력을 잃었다.
나도 알아요 0오늘 태어난 듯 이름도 ‘오늘이’였던 아이의 부모 찾기
들판에서 홀로 자란 오늘이는 부모가 원천강에 있다는 말을 듣고 길을 나섰다. 가는 곳마다 꽃을 못 피우는 연꽃과 하늘로 못 오르는 존재들의 질문을 맡았고, 자기 뿌리를 찾은 뒤 돌아오며 그 답도 전해 주었다.
나도 알아요 0부엌과 변소와 대문 신이 한 가족 싸움에서 나온 까닭
아버지가 먼길에서 데려온 새 여인은 본처와 아이들을 없애려 계략을 꾸몄다. 죽은 어머니와 살아남은 아들들이 원한을 풀고 나자, 가족들은 문과 부엌과 변소처럼 집의 서로 다른 자리를 맡는 신이 되었다.
나도 알아요 0사진 · 소리 · 영상
아직 첨부된 자료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