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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 없어도 땅에 긋던 우물고누
종이도 판도 없으면 흙바닥에 네모와 대각선을 그었다. 검은 돌과 흰 돌 대신 한쪽은 자갈, 다른 쪽은 깨진 기왓조각을 놓고 상대 말을 구석에 몰아넣었다.
새집 거실 한복판에 시루떡부터 놓은 이삿날
가구가 들어오기 전 빈 거실에 붉은 팥시루떡과 물 한 그릇을 놓았다. 굿을 크게 하지 않는 집도 이웃과 떡을 나눠 먹으며 ‘집이 사람을 잘 받아주라’고 짧게 빌었다.
대나무 마디 하나로 양동이를 비우던 물총
속 빈 대나무 통 한쪽에 작은 구멍을 내고, 가는 막대 끝에는 헝겊을 여러 겹 감았다. 막대를 뒤로 당겨 물을 빨아들인 뒤 힘껏 밀면 생각보다 굵은 물줄기가 담장 너머까지 날아갔다.
밤방아 찧으며 남의 집 흉까지 넣던 방아타령
달빛에 방아를 찧는 일이 길어지면 앞소리꾼은 마을 소문을 사설에 슬쩍 끼워 넣었다. 방앗공이 박자에 맞춰 후렴을 받던 사람들은 누구 이야기인지 알아채고도 모른 척 웃었다.
몸은 반쪽인데 호랑이를 통째로 들고 온 반쪽이
형들은 몸이 반뿐인 동생을 떼어놓으려고 나무에 묶었다. 반쪽이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등에 지고 돌아왔고, 장가를 막으려는 처가의 시험도 엉뚱한 힘과 재치로 통과했다.
대화방에 들어와 한마디도 안 하던 ‘잠수’ 회원
대화방 목록에는 분명 아이디가 있는데 불러도 답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화면만 읽는다는 뜻으로 ROM족이라 부르거나 ‘잠수 탔다’고 했고, 오래 조용하면 접속이 끊긴 건지 일부러 듣고만 있는지 수군댔다.
운동회 날 하늘이 콩주머니로 까매지던 판
청군과 백군이 작은 콩주머니를 한꺼번에 던지면 대나무 장대 위 박이 우박 맞듯 흔들렸다. 박이 갈라져 색종이가 쏟아지는 순간보다, 덜 터진 박을 향해 마지막 주머니를 주워 던지는 순간이 더 시끄러웠다.
새벽 골목에서 ‘복조리 사려’ 소리가 먼저 온 설
정초 새벽이면 조리를 가득 멘 장수가 골목에서 복조리를 외쳤다. 어머니는 값을 깎지 않고 하나를 사 대문이나 부엌에 걸었고, 그 조리로 쌀을 이는 일보다 복을 담는 일이 먼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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